♦ 운악산
운악산은 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과 함꼐 경기 5악으로 불리는 산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수려하다.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경치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산 자체로도 명산이라 할 만하다. 기괴한 모양의 산봉우리와 바위돌이 산의 골격을 이루며 산골마다 백년폭포, 무우폭포 등 아름다운 경관이 숨어 있다.
가을 단풍이 특히 유명한데 여러 암벽을 넘는 재미가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더한다.
♦ 등산코스
- 1코스, 운주사 - 무지개폭포 - 신선대 - 궁예대궐터 - 애기봉 - 정상(서봉)
- 2코스, 운악광장 - 자연휴양림 - 운악사 - 소꼬리폭포 - 궁예성터 - 두꺼비바위 - 정상(서봉)
- 3코스, 대원사 - 서령골 - 귕소 - 동봉 - 정상(서봉)
- 1코스, 총 2시간, 2.6km
- 2코스, 총2시간 30분, 2.62km
- 3코스, 총2시간, 2.8km
주의, 운악산 2코스는 매우 가파르니 산행에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궁예 대궐터
서기 922년 후삼국시대 어느 날...
태봉국 왕 궁예는 배산한 부하 왕건에게 쫒겨 철원지역 명성산, 운악산 일대를 떠돌다가 이곳 운악산 산중에 기진한 몸을 의탁했다.
신라 왕권 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강보에 싸인 채 던져진 아이는 유모에 의해 생명을 건진 후 승려의 신분으로 청년이 되어 당대를 호령하던 태봉국 왕이 되었건만 왕건에 쫓기고 쫓겨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운악산 무지개폭포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래 사진의 골짜기가 '대궐터'라 전해지는 곳으로 궁예는 이곳 운악산에서 성을 쌓고 반년 동안이나 대행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 약수터
바위 틈에서 나오는 물줄기로 물을 챙겨오지 않는 나에게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물맛도 최고.
12월에 마시는 산속 약숫물!
♦ 흥폭, 궁예의 최후
포천군 화현면 화현리 운악산중에 속칭 무지개폭포라는 면경대가 있다.
운악산의 심유한 맛도 좋지만 이 폭포야말로 700여척(1척=0.3m)이나 되는 장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발이 심하면 절수 되는 것이 흠이나 우기에 들면 폭포의 줄기만도 200여척이나 되어 수백필의 백포를 드리운 것 같다.
폭포의 소리도 200여척의 거폭이 떨어짐에 태산중복이 뒤 흔들리는 듯 싶다.
폭포의 위로부터 이어져있는 사암절벽도 일대 장관이다. 겨울에는 이폭포의 줄기가 얼어서 송미속의 백폭이 눈에 부시다. 이 일대의 경관은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애환이 한토막 남아있다.
지금으로부터 천백년전 부슬비가 내리는 날 저녁 무렵 한 초라한 선비하나가 다리를 질질 끌며 이 산중으로 왔던 것이다.
전신은 피투성이며 머리는 깨어지고 무릎에서도 선혈이 낭자했다.
이 선비가 철원에 태봉왕국을 세웠던 국왕. 궁예 바로 그사람이었던 것이다.
궁예는 원래 신라 사십칠대 한인왕의 왕자였다.그러나 궁예가 왕위를 둘러싼 음모의 원인이라는 정황에 왕은 궁예를 살해할 눈치까지 보였고 궁예의 생모도 같은 운명에 신라를 등지고 태봉국을 철원에 세웠으나 광적인 잔학성에 민심이 왕건에게로 쏠리자 궁예의 제신이 왕건을 받들어 왕을 삼은 것이다.
궁예는 황소가 자기앞에서 대성을 내었다하여 소의 주인을 잡아다 목을 베는 등 갖은 짓을 다 한 왕이었으나 왕건이 일어서자 달아날 길이 없었다.
왕국의 몰락함을 알고 궁에서 나온 궁예는 농사꾼에게 가래로 머리를 찍힌채 이 운악산 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폭포에 들어 우선 선혈이나 씻자던 것이나 모든권세와 영화를 누리던 태봉국 왕도 시종하나없이 이렇게 비참하게 될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일설에는 궁예왕이 이 면경대에 성을 축성하고 반년간이나 왕건군에 대항했다는 설도 있다. 이 면경대에 남아 있는 성지도 궁예가 입산후에 왕건군을 막기 위해서 신축한 성지라도 전해지고 있다.
궁예가 농군의 가래에 맞고 산중으로 피를 흘리며 들어 갔다는 기록도 있고보니 이 면경대 무지개폭포에서 슬픈 최후를 마쳤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1957년 '경기도지'에서 발췌
♦ 운악산성
포천시 향토유적 제49호
포천시와 가평군의 경계에 있는 운악산에 축조된 산성이다.
험준한 산의 절벽을 많이 활용하여 극히 적은 부분만 돌로 성벽을 쌓았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지고, 무지치(무지개) 폭포 동북쪽 능선에 일부분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 포천 읍지에는 운악산 꼭대기에 옛 대궐 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성은 험준하고 높은 입지를 선택하여 적은 노동력으로 한정된 구역에만 성을 쌓았으며, 축성방법에 계획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성을 갖은 산성은 고려시대 이후 갑작스러운 외침에 대비하여 축조한 사례가 많다.
출토된 기와와 토기는 주로 고려~조선 시대에 사용된 것이다.
이를 통해 보면, 운악산성은 고려 시대에 거란과 몽고, 합단이 침입했을 때, 혹은 고려 말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이 극심한 시기에 시급히 축조하여 사용되다가 곧 폐기된 것으로 추측된다.
♦ 운악산 정상
정상에 오르는 길은 계단이 많습니다. 계단으로 오르기도, 내려오기도 힘들었습니다.
등산로 입구 마련되어 있는 공영주차장은 상당히 넓게 조성되어 많은 분들이 방문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운악산을 오를 때에는 안개가 산주위를 감싸고 있어, '이름에 걸맞게 맞이하여 주는구나' 기분 좋게 시작하는 산행이었습니다.
1코스, 2코스, 3코스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데,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1코스로만 다녀왔습니다.
23년 12월 중순이 되었으나 날씨가 8~12도까지 이어지는 이상기후로 진달래 봉우리가 피었습니다.
반갑지만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등산로는 낙엽으로 겹겹히 쌓여 바닥이 보이지 않으니 조심해서 올라야 합니다. 낙엽으로 가려진 돌틈을 밟게되면 다칠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도 조심하세요. 잎새가 없는 나뭇가지는 얇은 경우, 눈에 보이지 않아 눈에 손상을 줄 위험이 있습니다.
가산낚시터에서 밤낚시를 즐기고 붕어를 낚지 못하고, 운악산을 들렸습니다.
밤낚시와 등산을 함께 전국 명산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Traveling > S. K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철 안전 산행법 (39) | 2024.03.26 |
---|---|
겨울 산악인 필수품, 아이젠(Eisen)의 발전 (80) | 2024.02.15 |
열아홉 번째, 다왔지만 다온게 아니다 수락산 (3) | 2023.11.27 |
열여덟 번째, 최영장군님의 똘기를 엿볼 수 있는 돌산, 용봉산 (2) | 2023.10.26 |
열일곱 번째, 금북정맥 최고봉, 서해바다를 품은 오서산 (2) | 2023.10.25 |
댓글